베라왕(Vera Wang)의 약력과 웨딩사업확장, 그리고 리더쉽
베라왕(Vera Wang)의 약력과 웨딩사업확장, 그리고 리더쉽
베라왕의 사업가 기질이 심상치 않습니다. 웨딩드레스는 물론 유행옷에서부터 향수를 추가하더니 홈데코용품, 가방, 아이웨어 각종 패션아이템을 하나하나 추가시켜가며 루이비통 모엣헤네시(LVMH)와 같은 거대한 종합패션브랜드를 내심 꿈꾸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 베라왕 웨딩드레스 : 베라왕 웨딩드레스의 가격과 디테일에 대해서
그렇다면 아무리 패션관련업의 기재였던들, 디자인과는 직접적으로 거리가 있었던 그녀가 20년 남짓한 기간동안 웨딩디자인계에서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전세계 셀러브리티를 열광시키는 베라왕 (Vera Wang)
빅토리아 베컴과 제니퍼 로페즈, 어셔, 심은하 등 셀레브러티들의 결혼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웨딩드레스. 심플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로 웨딩드레스의 브랜드 시대를 연 베라왕. 그는 40세의 나이에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패션업계에 종사할 수 있다면 바닥을 쓸고 봉투에 풀칠하는 일이라도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고 밝힌 그는 적지 않은 나이로 패션 디자인을 시작한 것이다. 작은 웨딩드레스 부티크로 시작한 베라왕은 이제 세계 셀레브러티들을 열광시키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 ‘베라왕’이 불과 런칭 10여 년 만에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 트렌드의 불모지 웨딩드레스업계를 평정하다.
1949년 생 베라왕은 소르본 대학을 나온 재원이다. 10대의 그녀는 피겨스케이트 선수였고, 20대에는 패션지 보그(Vogue)의 최연소 수석 에디터로 일했으며, 30대에는 랄프 로렌 하우스의 디자인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드라마 같은 삶을 이어갔다.
1990년 40살의 나이에 트렌드의 불모지인 웨딩드레스 분야로 진출하겠다고 나선 것. 당시 결혼을 준비하던 베라왕은 과도한 레이스 장식의 판에 박힌 듯한 웨딩드레스들에 무료함을 느꼈다. 모던하고 심플한 웨딩드레스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평소 패션 디자인 사업을 희망했던 그는 4년 후 그의 이름을 건 의상실을 마련하고 고급스러운 소재, 심플하면서도 포인트 디테일이 강조된 웨딩드레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클래식한 라인의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평가 받는 베라왕은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미지 관리와 판매까지 직접 나섰던 덕에 고객의 선호도와 취향, 적당한 가격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그는 까다로운 입맛의 트렌드 세터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을 사로잡았다. 스페셜 오더를 통해 제작되는 베라왕 드레스는 대여 문화에 익숙한 국내에서 새로운 웨딩 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3. 베라왕의 리더십
작은 의상실로 시작된 베라왕 드레스는 4년 후 독립 브랜드로 재탄생 했고, 20년이 채 안돼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제 베라왕은 웨딩드레스뿐 아니라 홈 컬렉션, 란제리, 파인 주얼리, 향수까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브랜드 규모와 파워를 키워나갈 수 있었던 저변에는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기업을 경영하는 베라왕의 리더십>이 있었다. 휴대폰이 없는 CEO로도 유명한 그는 열린 자세로 직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전화를 통해서도 부족하다고 느껴 사무실을 항상 열어놓는 그다. 베라왕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리더십은 현대적인 기업 경영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톰 피터스가 새로운 리더로 여성을 주목하는 이유와 일맥 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