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은 고지서, "축의금 준 만큼 받아내야지"

갈수록 증가하는 축의금은 비공식적인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특히 은퇴한 가장, 혼주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부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결혼이라는 의례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관행으로 일부 변질되고 있는건 아닌지, 그 실태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1. 청첩장은 고지서?

지난달 강남의 한 특급호텔에서 결혼한 이모(여·29·외국계컨설팅사 근무)씨는 "부부가 축의금 5만원을 내고 1인당 8만원짜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는 정말 얄미웠다"고 밝혔습니다. 축의금 10만원 내고 아이들까지 네 식구가 온 경우도 있었는데, 말을 못하고 속만 끓였다는 것입니다. 이씨는 "그래도 직접 오지 않고 돈 봉투만 보낸 분들 덕분에 '마이너스'는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고가의 식사가 제공되는 특급호텔의 결혼식은 청첩장을 받아든 하객들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습니다. 회사원 김상훈(27)씨는 혼주들한테 눈총 받기 싫어 특급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에는 거의 가지 않습니다. 김씨는 "호텔 결혼식은 식대만 10만원 가까이 된다는 것은 안다"면서도 "내 형편에 10만원 넘게 축의금을 내기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축의금만 5만원 정도 넣어 다른 사람 편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2. 축의금 명부가 마치 채권·채무증서처럼

축의금 봉투가 갈수록 두꺼워지면서 마치 가계부를 쓰듯 축의금 장부를 쓰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축하해준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상대방이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겠다는 '실용적' 목적이 대부분입니다.

네 남매 가운데 세 딸을 출가시킨 개인택시 기사 이모(61)씨는 세 번의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명부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청첩장을 받으면, 명부부터 뒤져 축의금 액수를 정합니다. 이씨는 "명부에 있는 400명에겐 최소한 받은 것만큼은 갚아야 하는데 최근 불황으로 수입이 뚝 떨어져 축의금 내는 게 정말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서울 상도동에 사는 주부 김모(여·58)씨는 5년 전부터 대학노트에 경조사 지출기록부를 쓰고 있습니다. 큰아들(33)과 둘째 아들(30)이 혼기가 차 오면서 만든 것입니다. 현재 장부에 기록된 사람은 500명. 이 중 70% 정도가 김씨가 축의금을 냈던 결혼식의 혼주들입니다. 김씨는 "서로 주고 받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재작년과 작년에 아들 둘을 모두 장가보내고 나니 이젠 '채무증서'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3. 부담스러운 축의금 악순환

사회생활을 하면서 축의금을 내온 가장들은 "아이들이 내가 은퇴 전에 꼭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회사원 강모(30)씨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 결혼해야 결혼 자금을 모두 대줄 수 있다" 는 아버지 때문에 올해 초 결혼 정보회사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은행 지점장으로 올해 말 정년 퇴임을 앞둔 부친이 "내가 현직에 있어야 축의금이 많다. 만약 올해 결혼 못하면 결혼자금은 네가 해결하라"고 엄포를 놨기 때문입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이모(48)씨는 작년 말 이사를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이씨는 새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옮기고 싶었지만, 교회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15년 가까이 꼬박꼬박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의금을 냈거든요. 돈을 낸 결혼식만 100건이 넘어요.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결혼할 때까지는 불편해도 계속 그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어요."

일부 웨딩업체들은 한 푼의 축의금이 아쉬운 혼주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축의금 2배로 늘리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이 청첩장 300장 갖고는 부족하다. 각종 동영상을 담은 청첩장을 이메일로 보내 '융단폭격'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